
이쪽 계열의 일을 하다 보면 우린 일반인과 달리 시간이 많이 남아돈다. 어쩌면 일반인보다 많은 자유시간을 가진 만큼 벌이는 좋지 못하다. 한 영화사에 엮여 끊임없이 일을 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그건 특이한 케이스이고 대부분의 스텝들은 한 편의 영화가 마무리되면 다음 영화의 면접을 보며 자유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반적인 영화 스텝의 경우는 감독을 준비하는 사람보다는 자유시간의 텀이 적은 편이다. 대부분 한 작품이 끝나면 당장 인력을 원하는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1년에 많으면 1~2편 정도의 작품을 쉬지 않고 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초기 기획단계부터 매진해야 하는 신인 감독 지망생의 경우는 노동법에 저촉되지도 않는 <한량> 취급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의 경우엔 수년 전 A 제작사에서 푼돈을 받고 투자를 준비하며 2년을 보내다 결국 제작이 중단되었다. 이어 두번째 만난 지인이 제작을 해보겠다 나섰지만 그 역시 무리수라 무산되었고 또다시 3년의 시간을 허투루 보냈다. 이젠 어느 정도 믿을 법한 회사와 일을 진행하는 중이지만 갑작스러운 영화시장 침체로 최근 4년 가까이 사경을 헤매는 중이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일반인이라면 이렇게 물어볼 것이다....... 사는데 지장 없어요?
물론 지장이 많다. 아니 요즘은 특히 더 어렵다. 물론 내 스토리가 정석적인 루트는 아니지만 업계에서 감독 자릴 얻기 위해선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최근 상영영화들의 부진으로 투자가 줄어들면서 연간 제작 편 수가 반토막이 되어버렸고 나 같은 감독 지망생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렇다고 생계를 위한 다른 일을 택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다. 혹시나 내가 자릴 비운 순간 다른 누군가가 나의 기회를 차지할지도 모른단 강박 때문에 쉽사리 자릴 비우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하물며 이 나이 먹고서 일반적인 직장에 어떻게 신입으로 취업을 할 수 있겠는가? 할만 한 일이라 해봐야 일용직이나 알바 수준일 뿐이다.


최근 스텝들의 일자리도 줄어든 만큼 영화 조감독으로 활동 중인 대학동창 역시 고난의 행군 중이다. 몇 년 전엔 유명 OTT 작품에서 활약한 조감독이라 한동안 일자리가 끊이질 않았지만 지금은 갑작스레 일이 줄어들었다며 난감해했다. 침체된 시장으로 인한 기약 없는 시간. 동종 업계의 주변인 중엔 책임질 가족을 위해 부업에 빠져든 사람들이 많아졌고 어떤 감독 지망생들은 이 위기를 기회로 여기며 골방에 처박혀 또 다른 작품을 집필하기도 한다.
아무튼 오랜만에 만난 대학동창과 함께 또 한 번 산에 올랐다. 우리 쪽 사람들은 심란한 시점에 한적한 산을 많이 찾는다. 일반인이 누리기엔 어려운 평일의 등산이지만 우리에겐 재정비를 위한 가장 평온한 시간이도 하다. 결국 우리가 좋아하는 건 영화고 할 수 있는 일도 영화일 뿐이다. 그 일에 대한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고픈 영화인들은 쉬는 시간 중에 심신의 재정비 목적으로 자주 산을 찾는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산>만큼 기분 전환하기 좋은 곳은 없기 때문이다. 높은 산 정상에 올라 저 멀리 펼쳐진 도시를 바라보며 언젠가 나에게도 기회가 오겠지란 바람을 기도하고 움츠려든 심신을 리프레시하기에도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산행을 마친 친구와의 대낮 500cc 한 잔은 고단함 속 소중한 활력소가 된다.
정상에 오르면 복잡한 머리가 비워지고 힘든 산길을 이겨낸 용기와 인내심은 어느덧 새로운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힘들다고 포기하지 말자. 조금만 더 노력하고 올라가 보자. 그러면 언젠가 정상을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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